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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축 이야기/칼럼

[건축칼럼] 독일 남부 소도시, 튀빙겐 관찰기 (2) - 독일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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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젊은 건축매거진 '잡담' 2020년 여름호에 에디터로 참여한 글이다. 내가 2년 동안 참여한 건축잡지 '잡담'은 텀블벅에서 찾을 수 있다. 텀블벅링크 이동

 

‹잡담› 편집부

잡담은 건축을 공부하는, 건축을 사랑하는 20대가 모인 학생 건축 비평 콜렉티브입니다. 서울-경기권의 학과 무관 대학생으로 구성되어 매주 회의를 통해 연 4회 계간지를 발행합니다. 현재 텀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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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집들

[사진 5] 네카강을 따라 있는 오래된 주택들

 

 긴 비행 끝에 도착한 튀빙겐에서 짐을 풀고, 첫 등교를 한다. 가이드북에서 튀빙겐을 가리켜 동화 속과 같은 도시, 낭만적인 목조가옥들이 가득한 지방 도시 등으로 그려내곤 해서 기대를 가득 담고 집을 나섰다. 실제로 튀빙겐은 새로 지어지는 건물보다는 이미 지어진 지 오래된 건물들이 많으며, 지역 전통 양식으로 지어진 목조 가옥들 또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강 북쪽의 구도심을 걸으면 마치 중세시대의 도시를 걷는 듯하다. 대부분이 철근 콘크리트로 지어진 아파트에 사는 한국에서 온 나로서는 신기한 풍경이면서도, 왜 집을 무너뜨리고 새로 짓지 않는지 의문이 든다.

 

 몇백 년이 넘은 건물을 찾는 것은 튀빙겐에서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더 의미 있는 사실은 이렇게 서 있는 건물들이 보존을 목적으로 남겨진 것이라기보다는, 실제로 사람들의 삶 속에서 기능만을 바꾼 채 몇백 년 동안 유지되어 왔다는 것이다. 어떤 건물은 작은 호텔이 되었고, 어떤 건물 아래에는 H&M이 들어섰다. 한편, 이 건물들 앞을 지나가면서는 방학 때마다 새롭게 바뀌는 안암동의 상가들처럼, 다시 새롭게 리모델링을 하고 다른 가게로 바뀌는 광경을 구경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집이 낡으면 철거한 뒤 새 건물을 짓고 다시 분양하는 것이 보통의 일일 것이다. 재개발로 이전의 건물들이 광범위로 헐리고 그 위에 대리석으로 외장을 한 상가들과 치솟는 아파트가 올라가야 우리 속이 팍 풀릴지 모른다. 그런데 왜 이곳 튀빙겐 사람들은 100년이 넘어가는 이 집들을 계속 고쳐 쓰면서 사용할까, 또 그렇게 지어진 집들에서 살면서 이 동네는 어떤 영향을 받고 있는지 생각해 보았다.

 

1. 삐걱거리는 소리

 먼저 이 건물들을 보자면 콘크리트를 사용하는 때도 있지만 주로 목재와 석재를 주재료로 사용한다. 이때 전통양식의 목구조가 즐겨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내가 머물던 게스트하우스 또한 네카강(Neckar Fluss) 인근에 있는 오래된 주택 중 하나로, 0층에서 내 방이 있는 1층(독일은 건물의 맨 아래층은 우리처럼 1층이 아닌 0층이다.)까지 올라갈 때면 끊임없는 삐걱거림을 들어야 한다. 끼이이익. 끼익. 쿵쿵. 무거운 캐리어를 들고서 올라갈 때면 이러다 계단 하나 부숴버리는 것이 아닌가 조심하면서 올라가다가도, 그 수 없는 세월 동안 여기서 계단 노릇을 했을 것을 생각하면 안심이 된다.

 

[사진 6] 호헨튀빙겐성에 사용된 목구조

 

 한 달 동안 공부한 대학 건물 중에서도 오래된 건물들은 이렇게 목재를 주재료로 사용한 것이 많았다. 우리나라처럼 캠퍼스 한곳에 건물들이 모여 있는 것이 아니라 15세기부터 새로운 건물이 필요할 때마다 도시 곳곳에 새로 지어졌기 때문에 건물마다 건축 양식과 재료의 스펙트럼이 매우 다양하다. 그중 독일어 수업이 열린 어학 과정 건물의 경우 매우 작은 건물이었는데, 목재와 콘크리트에다가, 후에 보강한 것인지 철골까지 섞여 있는 듯해 보였다. 바로 옆길에서 자동차가 지나갈 때면 책상이 두두둥 흔들리기도 할 만큼 때로는 연약해 보였지만, 이 건물은 지난 세월 동안 수없이 흔들려오며 이 자리에 서 있었다. 나는 평소에 콘크리트가 목재보다 더 믿을만하고 튼튼한 재료라고 생각하곤 했는데 튀빙겐에서는 생각이 좀 달라졌다. 건축재료의 물리적인 성질을 따지기 전에, 아무래도 이들보다 먼저 무너진 것은 우리나라에 있던 콘크리트 아파트들이다.

 

 이렇게 지어진 목재 중심의 건축물들은 내 생각처럼 수명이 짧거나 약하지 않았다. 튀빙겐을 돌아다니면서 새 건물을 짓는 건설 공사를 본 적은 거의 없었고, 주로 이미 있는 건물에 리모델링하는 것이 전부였다. 내 경험은 아주 단편적이지만, 건물을 부수고 새로 짓는 것보다 계속 고쳐 쓰는 것이 독일의 오래된 주택 수명에 이바지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주택의 평균수명은 20여 년 정도인 것에 비해 독일 주택의 평균수명은 약 80년 정도로, 우리나라에서 4번 주택이 갈릴 때 독일에서는 평균적으로 한 건물이 계속해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에는 다른 여러 요인이 작용하겠지만, 주재료로서 목재를 사용하고 여러 번 개보수하는 튀빙겐의 모습 또한 그러한 결과의 원인일 것이다.

 

[사진 7] 튀빙겐의 시청사

 

 목재는 한편으로 친환경적인 재료이기도 한 점 또한 내가 주목한 점 중 하나다. 이 집들이 처음 지어질 때는 그저 근처의 재료가 나무가 많으니 그것들로 집을 지었을 테지만, 목재가 가지는 지금의 의미는 사뭇 다를 수 있다. 독일에 잠시 사는 것임에도 독일사람들은 환경에 민감하다는 것을 느낀다. 이면지를 엮어서 만든 공책을 우리를 위한 환영선물로 주는가 하면, 마트에서 파는 식료품 대부분은 유전자조작 식품 비사용, 열대우림 보호, 동물권 보호 등 다양한 마크가 기본 한두 개 이상은 우다닥 붙어 있다. 이렇게 다양한 상품들을 통해 독일인에게 '환경보호'가 가지는 의미를 엿볼 수 있다. 이러고 보면, 굳이 긁어서 부스럼 만들듯 새 건물을 지을 것이 아니라 원래 건물 잘 닦아서 쓰자는 생각이 저변에 깔려있을지 모른다. 게다가 천연 재료인 나무로 만들었다니, 이보다 더 완벽하기 어렵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건설업은 환경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산업이다. 건물 하나를 짓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철근이 고속도로를 타고 달려오고, 시멘트는 또 얼마나 캐서 나르는가 하면, 얼마나 많이 땅을 파고 나무를 베는가. 또 그런 영향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지속적이다. 건설이 환경에 주는 영향이라 하면 단순히 건물을 올리는 과정만을 생각하기 쉽지만, 건물의 유지 보수에도 적지 않은 자원이 소비된다., 마지막으로 건축물이 폐기되는 과정에서도 소음공해와 대기오염은 물론이고, 한 번에 배출되는 처리가 곤란한 건설폐기물과 자원 낭비 모두 한 건물이 만들어내는 환경오염 요소들이다. 이를 알고 나면 적극적인 재사용으로 얻을 수 있는 경제적, 환경적 이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 점에서 볼 때, 먼저 목재는 구하기 쉽다. 유지보수 과정에서 재료를 찾기 위한 노력과 재료를 필요한 곳으로 운송할 때 발생하는 환경오염을 절감할 수 있는 측면이다. 또한  무엇보다 폐기 과정에서 콘크리트를 포함한 여타 화학제품들과 다르게 분해와 처리가 쉽기 때문에 환경에 부담이 덜하다. 설사 건물 전체를 부술 때 나오는 건설 폐기물들이 처리 과정에서 골칫거리가 되기도 하는데, 목재의 경우 자연분해가 가능한 유기물이기 때문에 철거에 따라 발생하는 환경 부담이 적다. 즉, 그들이 이처럼 목재를 사용하는 것은 건물을 지을 때뿐만 아니라, 건물의 건설부터 유지, 철거까지 고려하는 생애 주기의 관점에서 봤을 때 환경 보호 측면에서 긍정적인 면이다.

2. 유행과 맥락

 건축물에도 분명 유행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언젠가 유행한 컨테이너를 사용한 건축물을 생각해보았다. 건대의 커먼 그라운드, 서울숲의 언더스탠드 에비뉴, 고려대의 파이빌 모두 비슷한 시기에 우수수 지어졌다. 당시에는 새로운 시도였지만 이제는 별로 새로움도 느끼지 못하고 내가 볼 때는 가끔 '그때' 지어진 건물이겠거니 하는 인상을 남긴다. 건축물이 오랫동안 서 있기 위해서 재료도 중요하지만, 미학적 측면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재료가 아무리 좋고 튼튼하다 하더라도 결국 사용하는 사람들이 맘에 들지 않으면 부수고 새로 짓거나 리모델링을 할 것이다. 이런 면은 아무래도 수치로 나타내기 어려워 무시되는 것 같지만 분명 우리는 여기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렇게 유행을 따라가면서는 오래 서 있는 건물을 만들기 쉽지 않고, 유행이 지난 건물에서 시간을 보내는 우리의 마음 또한 편하지 않다.

 

[사진 8] 광장에 위치한 목조건물
[사진 9] 네카강 공원에서 바라본 북쪽 튀빙겐

 이런 점에서 다시 튀빙겐을 본다. 시청 앞에 서서 주변을 둘러보면 이들을 붙잡고 있는 동질성을 발견할 수 있다. 독일인 친구에게 물어보았을 때 이 지역의 전통 건축양식이라고 말한 목구조를 구조로 하여, 각각의 건물들이 나름의 변주를 통해 거리를 구성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거리의 모습은 한순간 휩쓸고 지나가 버리는 유행보다는 계속 그곳에 자리 잡아 장소를 규정하는 분위기에 의해 형성된다. 네카강을 따라 걸으면서 보이는 작은 집들과 상점 또한 이런 분위기 속에서 개성을 찾는다.

 

 이렇게 도시는 하나의 맥락(context)에 묶여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동네에서 골목을 걸으면서 모퉁이를 돌아 둘러보더라도, 내 집 앞과 비슷한 분위기가 펼쳐진다. 이러한 경험은 곧 '여기도 내 동네구나'하는 동질성으로서 연결된다. 결국 오래된 건물들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동질성은 물리적 환경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머무르는 사람들 사이의 심리적 동질성으로 연결된다. 건축을 배우면서 하드웨어 그 자체보다는 건축이 형성하는 그 안의 보이지 않는 소프트웨어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곤 하는데, 그 점에서 보았을 때 이런 오래된 건물들은 기본적으로 '좋은 소프트웨어'를 제공하는 것이다. 튀빙겐 중심에서도 아주 가끔 신식 건물을 보기도 하는데, 이 경우에도 예상을 크게 벗어나는 모습이 아니라 주변의 맥락을 이어받으려는 모습을 하고 있다. 궁궐 옆에 고층빌딩도 좋고, 빨간 벽돌집들 옆에 아파트도 좋지만 이런 튀빙겐의 모습은 당연하면서도 낯설다.

 

“독일에서는 옷 살 생각 하지 마세요~ 여러분” / “왜요?”

 

 이렇게 나름 복잡하게 생각을 해보면서도, 이유는 꽤 간단한 곳에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독일 사람들은 유행에 별로 민감하지 않다. 아니, 둔감하다. 독일에 가기 전 어학 수업 선생님은 종종 독일에서 산 옷은 한국에 와서 보면 촌스러우니 사지 말란 소리를 하셨다. 선입견을 품지 않고 경험하면서 내 생각을 가져보려 했지만, 결과적으로 그 말이 맞았다. 쇼윈도의 마네킹을 보면서 한국 학생들끼리 감탄을 금치 못하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와..옷 입힌 거 좀 봐..” 

 

아무래도 그들의 관심사는 실용성과 가성비에 있지, 유행에 있지 않은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건물들도 이와 같아서 섣불리 유행을 신경 쓰지 않는 것 아닐까.

 

 

3. 절약! 절약!

 사실 다른 이유보다 '절약'이라는 말이 이렇게 오래된 가옥들이 서 있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렇게 오래된 집들이 밀집한 지역은 다른 유럽 지역에서도 찾을 수 있지만 여기 독일에서 절약이라는 것은 충분히 이유가 될 만하다고 느꼈다. 독일인에 대한 편견 중에 절약이 항상 포함되곤 하는데, 내가 공부하고 있는 바뎀 뷔르텐베르크 주는 이곳 출신 사람들에 대한 대표적인 편견이 ‘구두쇠’일 만큼 독일 내에서도 절약으로 유명한 곳이다.

 

 내가 그런 선입견을 품고 독일인들을 만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독일 사람들은 본인들이 환경을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재활용을 한다는 점을 매우 뿌듯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일회용 컵조차 쓰는 것을 껄끄러워하는 그 사람들 앞에서, 충분히 다시 쓸 수 있는 건물을 통째로 부쉈다가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한편 이렇게 절약은 환경보호와 절약이 궤를 같이하기 때문에 환경보호에 대한 관념이 독일 내에서 잘 자리 잡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사진 10] 보증금(Pfand, 판트)을 환급받기 위해 모아둔 빈 병들

 

 이런 맥락에서, 건물을 오래 쓰는 것 자체로 상당한 절약을 끌어낼 수 있다. 새로 짓는 것보다 리모델링이 훨씬 저렴한 것은 당연하다. 독일에서는 어떨지 잘은 모르지만, 한국에서는 리모델링하여 건물을 사용할 경우, 새로 건물을 지을 때 적용되는 각종 규제를 따르지 않거나 완화되어 적용할 수 있게 되어있고, 좀 더 느슨한, 그래서 수익 측면에서 더 이익이 되는 이전 건축법을 따르도록 하기도 한다. 또 위에서 설명했듯 목구조에 기반한 특성상 필요한 때에 유지보수를 위한 부품을 구하기 쉽고, 콘크리트 건물과 같이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경우가 적다.

 

 사회적인 관점에서 볼 때도 새롭게 지어지는 건물로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 새롭게 건물을 짓는 과정에서 소모되는 행정인력과 공사와 철거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오염 등 오래 한 건물을 고쳐가며 사용하는 것은 건축물의 생애주기 관점에서 봤을 때 지역 사회의 관점에서 또한 상당한 절약이다.

 

(3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