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에서 만나는 서울의 근대건축물 산책
서울도시건축전시관 3월 취재 기사

궁궐과 고층빌딩 사이의 정동
“빽빽한 고층 건물과 아파트, 한강이랑 남산, 그리고 궁궐들.” 머릿속에 떠오르는 서울의 모습을 읊어보면, 대개 이런 모습을 떠올리곤 합니다. 이렇게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곳, 피곤하지만 낭만적인 곳이 제가 생각하는 서울의 풍경입니다.
이런 생각의 한편으로, 무 자르듯이 나뉜 고층 건물과 궁궐 사이에는 무엇이 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마치 내가 보려고 아껴 둔 영화의 줄거리를 빼놓고 배경과 결말만을 알아버린 듯한 느낌이니 말입니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그 빈칸을 채워 줄 정동길 근대건축 산책 코스를 소개합니다. 이 글을 따라 산책하면서 말 그대로 궁궐과 고층빌딩 사이에 위치한 정동길의 매력을 느껴 보시길 바랍니다.
정동과 정동길

정동길은 현재 시청역에서 걸어 나와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걸어가다 보면 만날 수 있습니다. 청계천을 중심으로 나뉘는 북촌과 남촌의 경계에 위치한 정동에는 덕수궁을 비롯하여 인근에 경희궁과 광화문, 그리고 경복궁이 있습니다. 이렇게 왕실과 양반 문화의 흔적이 남아있는 반면, 정동은 구한말 혼란스럽던 시기에 열강들이 앞다투어 터를 잡으며 서양문물이 들어온 곳이기도 했습니다. 1880년대부터 각국의 대사관에 이어 덕수궁 안에는 서양식 건축물인 석조전과 정관헌이 세워졌습니다. 또 고종이 최초로 커피를 마신 곳도, 우리나라 최초의 호텔인 손탁호텔이 세워진 곳도 이곳 정동이었죠. 이렇게 서양문물의 전래와 전통문화 파괴의 아픔 후에 우리 전통 건축물을 복원함과 더불어, 아픈 역사 또한 성숙하게 우리 역사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거치며 서울에 개성을 더해주는 오늘날의 정동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시청역 3번 출구로 나와서 서울 도시건축전시관부터 산책을 시작해볼까요?
서울도시건축전시관


근대건축물을 소개하는데 왜 최근에 지어진 서울도시건축전시관부터 가는지, 산책이 아니라 홍보가 아니냐고 의심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서울도시건축전시관은 정동의 역사를 잘 담고 있는 곳입니다. 전시관의 역사는 왕실과 전통문화의 정동부터 열강의 침략, 그리고 그것으로부터의 회복까지의 과정을 보여줍니다. 원래 고종의 후궁인 순현귀비 엄 씨의 위패를 모신 사당인 덕안궁이 있던 이곳은 후에 일제가 덕안궁을 허물고 조선총독부 체신국 청사를 짓습니다. 덕수궁이 보이지 않도록 태평로로부터 가려버리고, 덕수궁을 내려다보던 건물이었죠. 후에 이는 국세청의 남대문 별관으로 사용되다가 2019년 허물리고 서울도시건축 전시관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즉 우리가 보는 시원하게 뻥 뚫린 서울도시건축전시관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된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전시관 옥상에는 이전 건물의 기둥 일부를 남겨 놓았으니 한번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전시관 옥상에서 태평로를 바라보면 마치 숨통이 트인 것처럼 시원한 기분이니 상쾌한 산책의 출발지로 딱이겠죠?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바로 뒤의 멋진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물은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인데요. 햇빛 좋은 오후에 방문하면 아름다운 성당의 모습을 더 잘 즐길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유서 깊은 교회와 성당들을 가까이서 살펴보면, 신자가 아니더라도 경외감과 경건함, 그리고 딱딱하고 절제된 느낌을 받곤 합니다. 하지만 이 성당을 보면 왠지 따듯함과 익숙함, 그리고 든든함이 느껴집니다. 이쁜 주황색 지붕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성당을 다시 자세히 살펴보면 지붕에 올려진 기와에 살짝 당황하게 됩니다. 자세히 보면 처마장식과 수막새까지 있는 이 디테일, 그리고 유럽의 성당과 달리 붉은 벽돌로 쌓은 벽을 보면 여간 정성이 들어간 게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성당은 종교를 통한 단순한 문화의 이식과 침략이 아닌, 현지의 문화를 끌어안은 모습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석조전



본격적으로 정동길을 걷기 전에 덕수궁에 들어가면 우리의 편견을 벗어나는 석조전을 볼 수 있습니다. 얼마 전 본국인 독일로 돌아간 교환학생 친구가 덕수궁에 간 소감을 설명하면서 ‘한국 전통 건축물을 생각하면서 궁궐을 돌아다녔는데, 서양식 건물이 있어서 놀랐다’고 말한 기억이 납니다. 1900년에서 1910년까지 건설한 이 건물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근대건축물인데요. 짓기 시작할 때는 대한제국이었지만 완공 이전에 을사늑약으로 국권이 피탈되어, 이후 일제에 의해 미술관으로 사용되는 아픔을 겪기도 하였습니다. 자세히 보면, 전면 삼각 지붕(페디먼트, pediment)에 조선왕조를 상징하는 오얏꽃 문양이 있습니다.
정동제일교회

가수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를 알고 계시나요? 이 노래의 가사 중에는 '언젠가는 우리 모두 세월을 따라 떠나가지만 언덕 밑 정동길엔 아직 남아 있어요. 눈덮힌 조그만 교회당’이라는 가사가 있는데요. 이곳의 교회당이 바로 이곳 정동제일교회랍니다. 정동교회는 우리나라 최초의 개신교 예배당인데요. 정동제일교회는 교육과 의료를 통해 조선에 선진 문물을 전파하는 한편 구한말 당시의 전쟁을 비롯하여 항일운동과 현대의 민주화 운동에서 시민들의 피난처이자 중심지 역할을 했습니다.
구 신아일보 별관과 중명전




정동길을 따라서 쭉 가다 보면 구 신아일보 별관, 그리고 그 뒤에 있는 중명전을 만날 수 있습니다. 중명전은 대한제국 황실에 의해 도서관으로 쓰기 위해 지은 근대 건축물인데요. 후에 덕수궁 대화재 이후 고종의 거처로 사용하였습니다. 지금은 사라진 여러 전각과 함께 덕수궁에 속해 있었지만, 후에 일제가 덕수궁을 파괴하면서 중명전만 덩그러니 남게 되었죠. 신발을 벗고서 안에 직접 들어갈 볼 수 있으니 잠시 쉬었다가 가도 좋아요. 중명전 앞에 있는 신아일보는 보기에 평범해 보이지만, 1930년 당시 민간에서 잘 이용하지 않던 철근콘크리트 기법으로 지은 건물로 국가등록문화재랍니다. 붉은 벽돌로 된 외장이 정동길에 운치를 더해줍니다.
구 러시아 공사관과 정동근린공원

길을 따라 언덕을 좀만 더 올라오면 구 러시아 공사관과 정동근린공원에 도착합니다. 구 러시아 공사관은 지금 공사 중이기 때문에 보지 못하지만, 정동공원을 지나면서 상상하며 감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원래 구 러시아 공사관은 지금 남아 있는 탑 부분을 비롯하여 큰 규모로 건축되었지만, 6.25 전쟁을 겪으며 파괴되어 지금의 탑만이 남아 있습니다. 당시의 다른 외국인 소유의 여러 건물과 마찬가지로 덕수궁을 내려다보는 위치에 있었으니, 당시 조선사람들의 입장에서는 탐탁지 않은 건물이었습니다. 실제로 대한제국 당시 외부대신 임시서리를 지낸 민종묵은 각국 대사관에 다음과 같은 조회문을 보냈습니다. “…다만 정동 한 곳만은 만백성이 삼가고 우러르는 황궁과 가까운 곳이니 나라의 체모에 관련이 있습니다… 귀 영사께서는 귀국 신사와 상인들에게 두루 알려 정동 경계 안 및 부근에 새로 2층 건물을 짓지 않도록 해 주십시오.”
고종의 길

오늘 산책의 마지막은 고종의 길을 따라 걸으면서 다시 덕수궁 돌담길로 가보려고 합니다. 우리가 걷고 있는 이 길은 바로 고종이 거처를 러시아 공사관으로 옮긴 ‘아관파천’ 때 걸었을 길을 재현한 것인데요. 당시 을미사변 이후 신변의 위협을 느낀 고종은 아까 저희가 지나온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깁니다. 천천히 걸으며 오늘 근대건축물을 보며 느낀 근대의 시련, 그리고 한편으로 오늘날까지 그 모습을 담고 있는 정동의 모습을 생각하며 산책을 마무리하면 좋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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